심성희 110****
눈을 감았다 뜨면 내 집이 도서관으로 변해있었으면 하는 상상에, 날마다 책속에 푹 빠져살았던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책 속에 파묻혀 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글을 끄적일 때가 가장 행복했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말보다는 글이 더 편했고, 곧잘 공상과 환상의 세계에 빠지기를 좋아했던 그 소녀는 지금 영문학도로서 봄꽃이 따사로운 이화의 교정을 거닐고 있다. 그러던 중 소녀가 중학생 때부터 줄곧 좋아해왔던 이름만 들어도 어린시절 소녀의 꿈이 뭉게뭉게 되살아나는 바로 그 작가, ‘보르헤스’를 현재 그녀의 아지트인 도서관에서 만나게 되었다. 만으로 스무살 아직은 어린 영문학과 학부생이지만 나는 20년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다른 것을 내팽개쳐두더라도 책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아직까지도 스스로를 문학소녀라고 칭하고 다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3명, 바로 에드거 앨런포, 에테아 호프만, 그리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꿨다. 책 읽는 것, 글 쓰는 것, 꿈꾸는 것, 이 세가지 말고는 잘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독 환상과 광기의 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중학교 때부터 ‘환상문학 작가’를 꿈꾸게 되었다. 이런저런 동화도 써보았고 정말 말도 안되는 나의 이야기 속에 내가 빠져버리기도 했다. 보르헤스는 이런 나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친 작가이다. 나도 언젠가는 정말 훌륭한 작가가 되어 나만의 <바벨의 도서관>을 만들어야지, 라고 생각했다. 보르헤스의 작품 그리고 여타 환상문학작품을 탐독하면서 이들과는 또 다른 나만의 창작세계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교에 와서 나의 이런 꿈은 많이 좌절되었다. 1학년 1학기 때 이경희 교수님의 환상문학의 세계라는 강의를 듣고 더욱더 나의 꿈을 견고히 하였지만, 그해 여름방학, 나는 우리나라에서 환상문학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슬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우리학교에서 내가 제일 즐겨있는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친구들은 으레 과제하러 가느냐고 물었다. ‘책 읽으러’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믿지 않는 눈치였다. ‘글을 쓰겠다’고 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말렸다. 대신 사회에서 그렇게 부르짖는 ‘스펙’을 요구했다. 게다가 누군가 어떤 글을 쓰고 싶냐고 물었을 때 환상문학을 쓰겠다고 말하면 대부분은 고개를 저으며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희망을 잃어갔고, 글쓰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나, 이제 더 이상 꿈을 꾸면 안되는 것인가 하며 우울감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정말 기적처럼 다시 나의 꿈을 찾아주었다. 그것도 ‘도서관’에서 말이다. 꿈, 도서관, 환상... 이 모든 것은 보르헤스가 나에게 선물해준 것이기도 했고 나 그자체이기도 했다. 5월 22일, 송병선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보르헤스전을 통해 또다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지금 나는 도서관에서 내 꿈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 눈물 나게 기쁘다. 감사드린다.
강진희 111*****
보르헤스, 이상하게도 나는 그를 생각하면 그가 말년에 눈이 멀었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것은 한 세계의 닫힘이 아니라, 오히려 이 현실의 표면과 차단됨으로써 무한한 우주처럼 넓어진 그의 소설 세계와 유사하게 느껴진다. 그는 생의 모멸적인 반복성과 시간의 악마적인 완강함에서 벗어나 자유와 만났을 것이다. 현실의 지리멸렬함에 지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딛고 다른 세계를 펼쳐내는 것이 아마 문학의 본령일 것이라는 점에서, 그는 현대 문학의 알렙(처음이자 끝)이다. 감정과 체력이 다 소진되는 것 같은 5월을 보내고 도서관에 왔는데, 탐이 났지만 엄두가 안나 해제집만 구입해 몇 번을 뒤적인 <바벨의 도서관> 전집이 놓여있다니, 전시관에 머물고 있는 지금 좋은 꿈속에 있는 것만 같다. 문학의 꿈, 꿈속의 문학.
강현정 115****
어김없이 시험기간인 나는 아무생각 없이 도서관에 들어섰다. 그런데 붙어있는 포스트를 보니 ‘보르헤스전’을 한다는 것이 아닌가? 솔직히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읽다가 별로 감흥이 없었던 작품의 작가라 그냥 지나칠까도 생각해봤지만 “보르헤스의 글은 지금까지 간직해온 내 사고의 전 지평을 산산히 부숴버렸다”란 미셀 푸르의 글귀를 보고는 딱 멈춰서게 되었다. 요즘 나도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과생의 숨겨진 비밀, 난 현재 공상과학 분류의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 친구에게 나의 글을 공개했다가 너무 앞서가는 소설이 아니냐, 이런 장르는 어디에도 없다란 이야기를 들어 지금은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읽는다. 그랬는데 이번 전시회에서 보르헤스의 독창적 사고와 나와 비슷한 시도, 즉 글을 썼다는 이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시 내 글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오늘 집에 가서 보르헤스의 ‘Fiction'을 읽어보려 한다. 나의 글과 비교하면서.
김민유 124****
나는, 무겁고 심각한 독서가 아닌 가볍고 놀이 같은 보르헤스 읽기가 과연 무엇인지, 내가 그런 ‘유희적’인 독서를 경험해봤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유희적’인 글 읽기와, 쾌락과 소비의 용도로 가볍게 즐기는 글 읽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쾌락만을 위한 독서를 경멸했고, 항상 삶에 대한 무겁고 진지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책을 읽었기 때문에, ‘가볍게’ 책을 읽는 다는 것이 선뜻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삶에 대한 나의 ‘가벼운’ 태도를 수정하고 좀더 삶에 무게를 더하기 위해 책을 읽었던 적이 많은 것 같다. 나에게 작가들은 삶과 관련한 귀중한 보석들을 제공해주는 고귀한 스승들이었다.
보르헤스의 어떤 글에 따르면, 우리가 그토록 체계적이라고 생각하는 백과사전의 한 페이지에는 단순히 같은 모음으로 시작한다는 이유로, 전혀 서로 관련이 없는 오지에 사는 동물과 문명 국가의 제도 등이 함께 나열되어 있다. 서양이 근대적인 학문 체계에 따라 서술한 백과사전 조차,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백과 사전의 ‘권위’에 대해 잊어버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아무런 연관도 없는 괴상한 정보가 한 곳에 모여져 있는, 무질서의 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절대적인 것이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전혀 다른 새로운 것으로 전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두근두근하고 설렌다. 사상가 미셸 푸코는, 보르헤스 글에 실린 동물들을 괴상한 방법으로 분류해놓은 중국의 한 책에 대한 얘기를 읽고 어이가 없어서 깔깔 웃다가, 자신이 당연하게 생각하던 서양의 ‘체계’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내가 느끼는 두근두근함과, 푸코가 느낀 충격은 비슷한 종류인 것 같다.
보르헤스가 20세기의 패러다임을 창조했듯이, 나 또한 전혀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으로 지금과는 다른 22세기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22세기에는, 자본주의가 없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 또한 인간이 만든 제도인데, 인간이 충분히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가 역사의 종말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현재 ‘허구’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다. "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 -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 아인슈타인의 이 말이 보르헤스가 전하고자 했던 수많은 것들의 핵심이 아닐까. 이 핵심을 멋지게 전달해주신 송병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김송이 124****
그 전부터 중도 여기저기에 ‘보르헤스전 - 바벨의 도서관’ 이라는 포스터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막연하게 다음에 시간이 되면 꼭 보러가야지 하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 잊혀질 즈음 하던 때 도서관 2층 붉은 쇼파에 책을 읽으며 좀 쉬려고 올라왔고 그제서야 ‘오늘이 전시하는 날 중 하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가방을 소파에 둔 채 책을 구경하러 나섰다. 사실 이 전부터 보르헤스라는 작가를 알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쉘 푸코와 움베르트 에코가 극찬한 작가인 만큼 생전 그의 업적이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위대한 작가였지만 노벨상을 못받은 그는 특유의 관조적 어조로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 말을 보니 문학가만이 쓸 수 있는 많은 언어적 표현들이 궁금해졌고, 이는 곧 그의 책을 읽고자 하는 욕구로 이어졌다. 현실주의 문학을 좋아하기에 이런 복잡한 구성,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책을 몇권 읽어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기회에 보르헤스라는 대가를 만났고 그의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어 굉장히 뜻깊다. 또 고전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보르헤스가 직접 40권을 고르고 이에 대해 해설집을 내놓았었다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지금 당장 빌릴 수는 없지만 잘 메모해 두었다가 그가 엮어낸 미로 속에 빠지고 싶다. 앞으로도 이런 뜻 깊은 전시회가 많았으면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보러 올 것이다.
김영지 111****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에서 살다 그 속에서 죽은 작가라 감히 논할 수 있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르헤스는 평생 장님으로 살면서, 그의 마음 속 도서관과 그가 도서관장으로 지냈었던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에서 살았고, 후에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에서 장님 미치광이 수도사 호르헤로, 그 장서관과 함께 불타죽는다. 보르헤스의 모든 책을 읽진 않았지만 그의 강연 녹취록인 ‘칠일 밤’을 통하여 그의 엄청난 학식과 창의성에 놀람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보르헤스의 소설집이 두 권 있는데, 너무 어렵지만, 어렵기 때문에 읽을 때마다 다양한 해석과 시사점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진정한 형태의 고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보르헤스가 소설을 쓰던 당시만 하여도 불가능하거나 단순한 ‘가짜 사실주의’로 분류되던 것들이 오히려 현재의 디지털세계에 반영되어 수많은 기술자, 작가, 미술가들의 사고를 자극하고 현실화되도록-작년 3월 서울대에서 진행되었던 끝없이 두갈래로 나뉘는 정원전-하는 것을 보면, 보르헤스에 대해 더 넓고 깊은 집단적인 해석과 연구가 대중화되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보르헤스에 탐닉할 때에는, 보르헤스 관련 도서, 보르헤스 해제도서가 이리 많은 줄 몰랐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보르헤스를 더 알 수 있고 보르헤스의 사고 속을 더 잘 헤아릴 수 있는 기회가 이리 많다는 것을 알게되어 기쁘다. 어제 있었던 보르헤스 특강은 안타깝게 수업과 겹쳐 참여하지 못하여 정말 아쉽지만, 이 전시에 진열된 다른 도서들을 통해 보르헤스에 더 심화적으로 탐닉할 기회를 만들고 싶다.
김윤정 077****
도스토예프스키는 헤르만헤세와 더불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를 바벨의 도서관에 초청할 만큼 그를 사랑한 이가 있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바벨의 도서관’이 보르헤스 세계문학 전집의 제목이라는 점 역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4년이 훌쩍 지난 기간동안 대학생 신분으로 있어왔지만,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생각해보면 지성의 산실인 대학에서 ‘나는 과연 지성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가?’하는 회의가 든다. 특히 우수한 도서보유량을 자랑하는 우리학교 도서관이 가까이에 있음에도,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머문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부끄러울 따름이다.
중앙도서관에서 보르헤스전이 열린다는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책을 전시하는 것이 과연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회화나 조각 등은 전시회에서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지만, 책은 시간을 별도로 투자해서 스스로 읽어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보르헤스전을 관람해보니 이 전시는 보르헤스라는 작가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전시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전시를 관람한 후, 내가 모르고 있던 보르헤스라는 작가에 대해 궁금해졌고 그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어야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도서관에 ‘책을 읽기 위해’ 머물 수 잇었다. 전시공간 옆의 소파에 앉아 보르헤스의 대표작인 단편집 「픽션들」을 읽었는데,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음에도 느껴지는 보르헤스 특유의 문체를 접하니 도스토예프스키, 헤르만헤세와 더불어 보르헤스의 작품 역시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도서관은 언제나 찾아올 수 있고, 쉽게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인 것 같다.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서 독자가 오기를 기다려주는 고마운 공간이지만, 요즈음처럼 스마트폰 등의 각종 기기들이 친숙해진 시대에 종이로 된 책은 다소 어렵고 따분하게 느껴져 도서관까지 덩달아 멀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그런데 이번 보르헤스전처럼 도서관이 제자리에서 독자들을 기다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에게 다가와서 독자들이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도록 소개해주고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방향의 기획이 더욱 확산된다면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발걸음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든다.
김지아 087****
언젠가 'A Gentle Madness' 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도서수집광들을 다룬 책이었는데,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서제를 보니 그 작품이 떠오르더군요. 제목에서부터 독자로 하여금 바벨탑 안에서 분명히 살아있을 실로 방대한 양의 서가들로 구성된 도서관을 상상하게 하죠. 신에 의해 붕괴되기 전에 세상의 언어가 단 하나였던 것처럼. 보르헤스는 마찬가지로 그 탑이 무너지기 전에 도서관에 존재했을 단 하나의 진리, 그것을 다룬 총체적인 책에 대한 환상과 욕망을 그의 작품 <바벨의 도서관>을 통해 실체화하고 구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훌륭하고 창조적인 작가이자 책을 사랑하는 독자이기에 바벨의 도서관은 그의 호기심적, 환상적, 그리고 동경의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보르헤스의 궁극적인 이상향으로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창작한 것보다 읽은 것에 더 자부심을 느끼는 그는 그의 저서를 통해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과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간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지요. 'A Gentle Madness' 그에게 있어서 바벨의 도서관이 그런 공간이었듯이 여기 이화여대 도서관도 그러한 공감과 공유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오랜만에 좋은 경험을 했어요.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요즘 좋은 것도 없죠. 가끔 그런 경험은 아주 맛있는 식사를 한 것 같은 즐거운 기분을 선사한답니다.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어요. 책 한 권 빌려 갑니다. 감사합니다.
김지은 121****
부끄럽지만 보르헤스전에 참가하기 전까지 보르헤스란 작가가 누구인지 몰랐다. 보르헤스가 20세기 환상적 사실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을 보고 ‘엄청 위대한 작가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상당히 진지한 강연이 되리라 예상하며 특별강연을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교수님께서는 라틴아메리카의 농담문화를 설명하면서 보르헤스의 작품도 하나의 장난으로, 놀이로,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즐겁게 읽으라고 충고하셨다. 보르헤스가 환상적 사실주의 소설을 쓴 것도 사고로 인해 6개월 동안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보르헤스와 동일한 개념이 되어버린 거울, 백과사전, 미로, 도서관, 꿈의 개념에 대해서, 보르헤스의 작품의 특징인 상호 텍스트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에 대해 가볍고 유쾌하게 설명하셨다. 1시간 30분여간의 강연을 듣고 난 후 이번 여름방학에는 도서관에서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으며 환상의 세계에 푹 빠져 지내면 황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보르헤스라는 위대하고 흥미로운 작가를 소개시켜준 이번 전시회와 강연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현경 071*****
문학전공생, 그것도 박사과정생으로서는 참으로 부끄럽게도 나는 내가 전공하는 문학과 타문화권의 작가라는 이유로 보르헤스의 작품을 거의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영문으로 번역된 단편을 학부시절 접한 것이었고, 그것은 내 사고체계에 혼동을 주는 것이었다. 그 후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후기구조주의에 대해 배우면서 내가 좋아하는 국내외 현대작가들이 보르헤스와 같은 선구적으로 ‘마술적 현실주의’ 경향을 띤 작가들의 영향에 기대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는 스페인어권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 이번에 중앙도서관에서 보르헤스전을 개최한 것을 보고 매우 반가웠다. 보르헤스에 대한 문학적 평가, 바벨의 도서관 해제, 그의 작품집과 비평서 등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보르헤스가 나와 참 가까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보르헤스가 큰 병을 앓고 난 후에 환상적 마술주의의 선구적 작품을 창작한 유명한 이야기가 부각되어 있었다는 것이, 고통이 때로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개인의 경험을 하게 한다는 진부하지만 진실이 담겨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 감명 깊었다. 그리스 비극의 예언자와도 같이 예언자적 지성을 보였던 시각장애인 시인 밀턴과 같이, 보르헤스는 현대 문학의 향방을 바꾸어 놓은 예언적이고도 혁명적인 인물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가 창작한 작품보다 그의 생애, 전기에 관해 관심이 많은데, 이번 기회로 그의 작품에 나아가 스페인어권과 그 영향에 받은 작품에 대해 관심을 더욱 갖게 되어 기쁘다.
한지예 087****
그동안 유명한 문학작품은 대부분 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도서관에서 ‘보르헤스’라는 생소한 이름의 작가에 대한 전시를 한다고 해서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관람했습니다. 처음 그에 관한 설명을 읽었을 때에는 단순히 환상문학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환상적 사실주의라는 분야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단순하게만 결론 내렸습니다. 하지만 전시된 책 중 몇 작품을 읽으면서 ‘보르헤스’라는 작가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현실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작품의 의미에 파고도록 하는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환상과 사실이라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는 반대의 위치에 있는 단어들이 작품에 절묘하게 섞여있어 더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바벨의 도서관’ 에서는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작품을 단독으로 찾아 읽는 것도 좋지만, 보르헤스가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를 저와 비교하는 것도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악어’가 기대됩니다. 유익한 전시 감사드리고, 다음 전시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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